인권의 보편성: 대코로나 방역 정책과 '인권의 역설'
인권은 보편적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인권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그것이 잘 보호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독일계 유대인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산업 사회 이전부터 인권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그 개념이 확산되었다. 여기서 인권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천부인권사상과 같은 자연법적인 전통에 입각했다. 인권은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그 자체가 궁극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에도 근거를 두지 않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에서 난민들과 같은 무국적자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이들의 인권은 누구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때문에 기존 인식과 다르게 인권은 한 국가 내의 실정화된 권리 이전에 존재하는 권리로서 발휘되지 못하고, 시민권과의 구별도 불가능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국가 내에 속하지 않으면 인권의 보편성이 무색하게 그들의 인권은 철저히 배제되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아렌트가 주장한 인권의 역설이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들의 국적이 사라져 버린 그런 특수한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우선 차치하고서라도 그럼 국가가 버젓이 존립하는 경우에 과연 그 안에서는 인권의 보편성을 확립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렌트가 파악한 전체주의의 기원 요소인 반유대주의나 제국주의의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소련식 공산 체제의 주입 이후에 나타나는 북한의 선전과 조직, 주민들에 대한 총체적 지배 현상은 다분히 전체주의로 설명된다. 또한 북한 정부는 이러한 체제 내에서 공포 정치 및 통제 유지 수단으로 국민들에 대한 임의 구금과 고문, 강제 노역, 공개 처형, 그리고 정치범 수용소 운용 등 대규모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 이 모든 인권 수탈 행위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 내에서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주목된다. 더욱이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은 스스로 칭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대로 모든 인민들이 평등하게 주권을 가진 존재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헌법에 소위 인권법 또한 성문화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 역시 안타까운 일이지만 북한은 현재 히틀러와 스탈린이 일으킨 비극과도 별개인 전대미문의 절대권력세습 국가이므로 보편적 인권 확립을 기대하기에 현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또한 합당한 물음으로 나는 전적으로 우리 삶과 매우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국가가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힘쓰고 있다. 각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의 자가 격리를 의무화하고, 지역사회에 머무는 감염자를 찾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진단검사를 시행하고 전국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이 완화될 때까지 고강도 거리두기를 실시하는 등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까지 이 정책들의 결과 또한 매우 효과적이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세계적으로 정말 드물게도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아 적극적으로 믿고 따라준 데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역사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개인들이 무언가 희생한다는 소위 의병정신 등이 국민들의 의식 기저에 전반적으로 심어져 있어 협조의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심지어 이러한 시민 참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여론이 쏟아졌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국가주도의 방역 방법이 그르다는 얘기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대한민국의 대코로나 정책은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우리나라는 모범방역 국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과정에는 분명한 인권 침해가 일어났다. 우선 모든 해외 입국자들 뿐만 아니라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들에게 자가격리를 의무화한 것은 그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학생들은 대면 수업이 제한되어 자유롭게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권리가 침해되었다. 이 과정에서 또한 컴퓨터, 스마트 기기가 부족한 가정에서는 정부에서 기기 대여를 실시하긴 했지만 원격 수업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어린 아이들을 낮 시간동안 돌볼 수 없는 가정 등 빈부환경의 격차로 다양한 문제가 야기됐다. 다음으로 정부는 확산 방지를 위해 교회 신자들의 예배를 막는 등 종교의 자유 또한 침해했으며, 이어 대규모 확산을 우려해 다중밀집시설 중 특히 클럽이나 노래방과 같은 유흥시설들의 운영을 금지시킨 바도 있다 1. 이는 분명히 업주들의 경제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논란이 된 문제로는 확진자의 동선을 상세하게 공개하여 해당 인물이 특정되고, 이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가 다발적으로 발생한 바가 있다. 일례로 확진자 A씨의 동선 중 함께 식사한 사람이 처제라는 사실까지 공개되고 후에 처제만 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불륜이 아니냐’는 의심을 당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루머 공세를 당했다. 또 노래방을 수차례 방문한 동선이 공개된 B씨는 ‘노래방 도우미가 아니냐’는 억측으로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2. 오프라인 상에서도 공개된 정보와 정황으로 해당 인물이 특정되어 매장당하는 일도 생긴다.
위에 언급한 이 모든 사안들 그리고 이 밖에 발생한 많은 문제들은 아무리 공익의 목적이었다고 한들 명백한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 사실상 국가적인 재난의 상황에서 국민들은 국가라는 공권력에 본인들의 권리를 상당부분 양도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이처럼 국민들의 인권, 다시 말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불특정 다수가 감염되어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을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여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국가의 기본권 제한이 이번 사태처럼 특수한 어떤 위기 상황에 국한된다고 쳐도 이같이 제한해도 되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은 도대체 누가 정하며 그 선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특정 대의를 위해 국가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떤 급진적인 사회가 도래할지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중국의 통제사회처럼, 혹은 한걸음 더 나아가 국민의 머리에 전자칩을 심어 모든 경로와 행동을 추적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지 모른다. 또는 극단적인 예로, 유명 sf영화 ‘가타카’에 나온 것처럼 미리 사람들의 유전자를 검사하고 통제해 다수에게 위협을 끼칠 존재로 판단되면 미리 제거하는 등 디스토피아적인 사회가 탄생할지 어떻게 아는가.
사실 이러한 인권 침해는 비단 방역 정책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현 경제 정책에 따르면, 과도하게 오르고 있는 집값을 잡겠다는 명분을 세워 집을 두 채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 등을 투기꾼으로 몰아 그들의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을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임대업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종부세 기준을 급격하게 올리기도 한다 3. 이는 기본적 인권의 기준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지만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이 글에서는 한나 아렌트가 주목한 무국적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그리고 북한이라는 특수한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인권 침해,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의를 명분으로 한 다각도의 인권 침해와 그 위험성까지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선 확실한 점은 국가가 존재하더라도, 그리고 심지어 헌법에 국민의 인권이 명시되어 있으며 경제·문화적으로 발달된 나라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인권 침해가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하나 든 생각은 한나 아렌트가 역설했던 인권의 역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다른 의미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권을 지키기는 데 있어 국가와 사회제도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며 결국 인권의 보편성 확립을 위해 국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실정법을 통한 제도적인 보호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는 결코 일반화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헌법에서 애초에 중대한 문제가 따를 경우 기본권 또한 침해하는 게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어 이에 기반한 인권 침해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권리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훨씬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다양한 기본권들이 복잡하게 충돌할 때 각 개별 사건마다 기본권의 보호이익을 형량하여 보다 중요한 내지 우월한 이익을 우선 보장하는 접근 방식이 있는데 이를 ‘이익 형량’에 의한 해결 방법이라고 한다 4. 또한 다양한 인권 침해 중에서도 프라이버시면 프라이버시 문제, 경제 활동의 자유 문제면 해당 자유의 문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심층적 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입법부와 정부 기관뿐 아니라 여러 법학회와 교수들, 또 시민 단체들이 코로나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등 다양한 구체적인 문제의 권리 조율과 법적인 제정에 대해 논하고 있다 5. 난민과 같은 사각지대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학회들과 시민 단체 등에 의해 국내 지역적 논의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인권 문제를 다루는 실정법의 구체적 방향과 적용에 대한 글로벌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방법 하에서도 인권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변수와 상황까지 다루며 집요하게 활성화되는 논의가 언제나 필요하다.
글쓴이 김통렬
-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http://news.seoul.go.kr/welfare/archives/518401 [본문으로]
- 김두리,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 알 권리인가 사생활 침해인가.」 『WomanSense』 2020.4.29. <https://www.smlounge.co.kr/woman/article/44573> (2020.06.27.) [본문으로]
- 양은경, 「재산권 침해 소지… '15억 아파트 대출 금지' 憲訴」 『조선일보』 2019.12.18.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8/2019121800267.html> (2020.06.27.) [본문으로]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B%B3%B8%EA%B6%8C%EC%9D%98_%EC%B6%A9%EB%8F%8C [본문으로]
- 이순규, 「한국정보법학회, 27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보법의 도전과 과제' 세미나」 『동정뉴스』 2020.06.08.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2034> (2020.06.27.), 가장 최근 사례로 코로나 시대 정보기본권의 위협을 다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