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 시절.
2021년 12월 25일. 김통렬.
1. 나의 초등시절.
나의 초등시절은 내가 성남에 살던 시절, 남한산초등학교에 다닐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니 꽤 특별한 학교에 다녔는데, 남한산초는 산 위에 있는 조그마하고 오래된 학교로, 당시 최초의 혁신학교였다. 학급당 학생 수는 25명 남짓, 한 학년에 한 학급뿐이 없었다. 그 말은 학교에 딸린 유치원부터 해서 매년 우리는 같은 얼굴들과 그대로 학년이 올라가고, 아쉽게도 나는 5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졸업할 때까지 함께하는 셈이었다. 게다가 수업방식도 조금씩 다르고, 여러 가지 주위 환경, 주로 뒷산을 이용한 자연 친화적인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그런 학교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웠고 우리에게, 나에게, 친구들과 학교는 삶의 모든 것이었다. 집이 산 위에 있어 거기서 통학하는 몇몇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산 밑 주변 동네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렇지만 산 위에 사는 친구들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학교, 뒷산, 주변,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매일 놀러 다녔다. 학교가 3시쯤에 끝나면 주로 4시 50분 막차를 타고 가든가 아님 더 늦게 산을 왕복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곤 했다. 주로 하는 일은 이제 가재 잡기, 학교 뒷산에서 아지트 만들기, 도랑 혹은 하수구..? 탐험하기, 학교 도서관에서 책보기, 두붓집 하는 00이네, 학교 바로 앞에서 식당 하는 00이네, 방방이까지 딸린 엄청 큰 식당 하는 00네 놀러 가기 등이었다. 하루하루가 모험이었고, 산 위 모든 것들이 내 놀이터였다. 그렇다고 집은 따분했냐, 물론 부모님이 오기 전에 조금 심심한 감은 있었지만, 형이랑 놀았고 아파트 상가, 그리고 오 분 거리 밑에 있는 문방구는 천국이었으며 그 옆에 피아노 학원도 아주 열심히 다녔다. 당시 내 꿈으로 피아니스트도 얘기할 만큼 피아노도 재밌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질리고 이사가면서 아예 안치게 된 게 아쉽긴 했다.
아무튼 이처럼 가끔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될 때면 뭔가 따뜻한, 또는 춥지만 행복했던 그런 기억들이 뭉텅이로 어렴풋이 떠오르며 엄청난 향수가 밀려온다. 그 시절이, 그때 그 친구들이 그립다. 같이 졸업하지 못하고 이사 온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2. 이차 생각 몇 가지.
먼저 감사한 마음이다. 저 시절 남한산 얘기를 조금이나마 글로 써보니, 새삼 느껴진다. 저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게, 내 유년 시절을 행복한 기억으로 채울 수 있었던 게 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때 나를 키워준 친구들과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 모두들 어떻게 살지도 궁금하고 선생님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뵙고 싶다.
그리고 아무래도 지금의 모습과 견주어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가 희석됐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꼭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환경이 바뀌면서 사람도, 변한다. 또 그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이 특별했던 건지 세상이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참, 사람들이 따뜻했던 것 같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지금은 너무 아등바등, 서로 여유가 없는지 한 치 양보도 없이 예민하다. 어딜 가든지. 남들 잘잘못 따지기 바쁘고, 누가 못났네 누가 잘못했네 하면서 퇴보하는 것 같다. 피곤한 공동체주의보다는 개인주의가 백번 낫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말로만 개인주의고 본인들 평가당하는 건 싫어하며, YOLO를 외치지만 자기들 잣대는 언제든지 남들에게 들이민다.
마지막으로 나는 누구에게, 그때 그들이 그러했듯, 사람을 사람으로서 온전히 존중하고 전인격적으로 대우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